사제단이 '정신나간 신부들'이라고?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또다른 의미에서 강력한 '공적인 조직'이다. 교회를 두고 '신자들의 어머니'라고 하든가, 교회의 장상에게 순명하라고 하는 등은 모두 교회가 가지는 공적인 속성 때문이다. 그러한 속성 때문에 신학에서도 교회론은 중요한 분야로, 기본교의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세속정부는 종교를 구분하지 않는 지역공동체의 최고단위다. 신자들에게는 공적인 조직인 교회와 함께, 또다른 공적인 조직인 국가정부를 구별할 것을 요구한다. 성직자 또한 교회의 일원이자 국가의 일원이기 때문에 이러한 원칙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제의, 특히 영대(사제가 목어 걸어 늘어트리는 천)는 성직자가 교회의 공적인 임무를 수행한다는 표시를 나타낸다. 즉 신부가 영대를 걸치고 있음은 교회 차원의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뜻한다. 특히 교회가 공적으로 하느님께 드리고, 하느님 앞에서 행하는 전례(그리스도교 공식 의례)를 수행하는 중임을 뜻한다. 이러한 때 사제는 사제 개인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대변하는 중심적 역할을 맡는다.
성직자가 제의를 입고 영대를 걸치고 시위에 나선다 - 그건 바꾸어 말하면 국민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의지를 대변하여 나온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럼 촛불시위를 지지하지 않는 나는 교회의 뜻을 거부하는 불충한 신자란 말이냐? 이건 월권행위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바를 마치 교회 전체의 뜻인양 드러냄은 자신과 정치적 의견이 다른 신자를 무시하는 짓이다. 또한 교회를 사적으로 이용하는 짓이다. 시국 미사 역시 마찬가지다. 미사는 기본적으로 열려 있어야 하는, 하느님 앞에서 거행하는 제사이자 잔치다. 그런데 시국 미사가 '열린 미사'인가? 시국 미사는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종교의례의 형태를 빌려 드러낸 것이다. 시국 미사는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은 거부한다. 정치적 의견이 다른 신자가 시국 미사에 참석해서 하느님을 뵐 수 있겠나?
정의구현사제단이란 이름부터가 회원을 사제로 한정한다. 이는 교회의 이름과 권위를 빌려 좀 더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 또한 월권행위다. 교회의 공식 단체도 아니면서 왜 교회의 이름에 기대는가? 여러 사회적 사안에 대한 의견은 교회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국가의 일원으로서 말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며 책임져야 한다. 낙태나 사형 등은 교회의 장상들이 중요한 문제라 판단하여 교회 차원에서 거부 의견을 발표하지만, 그런 사항을 제외하면 교회는 여러 사회적 의견을 수용한다. 그러한 의견 하나하나에까지 간섭하지 않으며, 간섭할 수도 없다. 그리고 현 한국 사회에 대한 여러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신자들 개개인의 이성과 양심에 맡길 일이며, 또한 그렇게 한다.
<<만약 교회가 전면에 나서서 사회에 개입하려고 해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회에 어떤 자유로운 비판적 세력도 없는 최악의 상황일 때뿐이다. 어느 정도가 되어야 이러한 최악의 상황일지는 구체적 기준이 없어서 문제기는 하지만, 적어도 현 한국은 아니다.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나라가 자유로운 비판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
만약 사제들이 제의를 벗고, 수단을 입지 않고 국민 한 사람으로서 나갔다면, 비록 나와 정치적 의견이 다를지언정, 그 자체로 문제라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제의를 입고 영대를 걸치며 교회의 이름으로 시국 사태라며 나서니 문제다.
누가 교회의 이름으로 사태에 개입하려고 하나? 정치적 의견이 다른 신자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들이 하느님의 뜻을 알고, 교회를 대변한다고 하는 오만이다. 성직자가 한다고 무조건 교회를 대변할 수는 없으며, 하느님의 도구라고 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