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911

이것이 테러이니라


내가 처음으로 야오이를 접했을 때는 여러 가지로 충격이었다. 인터넷으로 알게 된 사람 중 (기이하게도) 동인녀가 많았다. 그 때문에 온갖 조교를 당하며 야오이를 접했으니, 나중에는 누가 공이고 수인지 함께 논할 정도였다. 그 또한 이제 와서는 암흑에 묻힌 옛 기억이다.

한창 조교당하던 그 즈음에 G양이 나에게 넌지시 운을 띄웠다. 재미난 동영상이 있으니 알려주겠다고 했다. 뭐냐고 물으니 기꺼이 링크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뿐이랴? 넘치는 호의로 덤 링크까지 알려주었다.



..........당시, 동인녀 사이에서 이름 높았다는 야오이 게임 호타루 오프닝 동영상 파일 ㅠㅠ 거기에 덤으로 알려준 파일은 카드캡터 사쿠라 실사판 오프닝 (그것도 남정네가 찍은 것)


저거 한 번 보고서 며칠간 장면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질 않으니 모에고 뭐고 못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나는 호타루 동영상 사건을 천천히 잊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지금은 그때 하고는 취향마저 달라졌다.

D 모군이 좋은 것이라며 링크를 알려주었다. 간만에 본 굽시니스트 만화. 그런데 내용이.... 내용이!


웃기다. 그림도 잘 그렸다.
하지만... 하지만 ㅠㅠ 그런 모에화는 모에人의 적 ;ㅅ;


거기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거나 샤워를 할 때마다 저 만화가 생각나니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다. 볼 때만 괴로운 것과 보고 나서도 괴로운 것 중 어디가 더 강력할까? 그 탓에 내 마음의 911로 자리매김했다.

by 비안네 | 2008/08/06 08:02 | 트랙백 | 덧글(6)

평양감사 = 교육부 장관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나에게는 교육부 장관 자리가 그러하다.  속담의 유래까지 거슬러 생각해 본다면, 나에게는 평양감사보다 더 못한 자리니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해야 좀 더 적절하겠다.  대통령 측근이 나에게 와 교육부 장관을 할 생각이 없느냐고 의사를 타진한다면 주저없이 거부하겠다.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가 마음에 안 들지만,  특히 교육분야에 있어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복잡하다.  그런 자리를 총괄하는 교육부 장관이라니,  가시방석도 그런 가시방석이 없다.  교육부 장관의 '장관'이란 직함에 넘어가 그 자리를 수락한 역대 교육부 장관들은 모두 자청하여 황금 멍에를 멘 꼴이다.  '장관'이란 직함에 무게중심을 둔다면 권력의 맛을 보겠지만,  '교육부'란 직함에 둔다면 가시밭길 강행군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어교육은 꼬인 사항 중에서도 으뜸으로 꼬였다.  상대방을 비꼬아 "영어단어나 하나라도 더 외워라" 할 때가 있으니  과연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어떤 위치인지 알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예수님이 미국인이며 영어로 말씀하신 줄 아는 아해도 있다.  영어는 조선시대 한문보다,  중세 라틴어보다 위세가 더 대단하다.  문자 그대로 지구촌을 석권하지 않았는가.  

영어와 우리말의 차이도 모르는 답답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대학총장쯤 되는 사람이 외래어 표기법을 바꾸어 '어륀지'라고 해야 한다고 말하는 판이니, 인문학적 소양이 바닥을 쳤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 민족주의자들이 성급하게 날뛰어 한글 만세를 외친다.  spring을 ㅅㅍ링이라고 쓰면 영어의 음절구조까지 반영할 수 있단다.  미치겠다.  ㅅㅍ링이라고 써 보아야  발음은 '스프링'이라고 하니,  알파벳으로 옮긴다면 'supu-ling'과 흡사하다.  잘도 영어음절구조까지 반영하겠다.   우리말은 한 음절 내에서 자음을 연속발음하기를 매우 힘들어한다.  그리고 한글은 이런 우리말 구조를 반영하여 초성/중성/종성 구조로 이루어졌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먹고 사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고,  사회적으로도 별로 나쁘게 보지 않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만 비로소 우리 교육에 숨통이 트인다고 판단한다. 대학에 무조건 보내려니까  시험 문제를 찍는 법까지 가르쳐주는 시대가 오지 않았는가.  또한 대학에 들어온 학생도 지식인이나 교양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시선이 너무 협소하다. 그럼 그렇다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전공과목을 깊이 파고 드느냐,  그렇지도 않다.   미치는 거다. 

인식을 바꾸려면 한두 해로 될 일이 아니다.  정책을 좀 바꾼다고 될 일도 아니다. 문자 그대로 백년지대계를 세워야만 비로소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아! 어떤 현명한 사람이 있어 이런 중차대한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까?

by 비안네 | 2008/08/01 00:49 | 잡담 | 트랙백 | 덧글(4)

나는 정의구현사제단을 지지하지 않는다.

사제단이 '정신나간 신부들'이라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또다른 의미에서 강력한 '공적인 조직'이다.  교회를 두고 '신자들의 어머니'라고 하든가,  교회의 장상에게 순명하라고 하는 등은 모두 교회가 가지는 공적인 속성 때문이다.  그러한 속성 때문에 신학에서도 교회론은 중요한 분야로,  기본교의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세속정부는 종교를 구분하지 않는 지역공동체의 최고단위다.   신자들에게는 공적인 조직인 교회와 함께, 또다른 공적인 조직인 국가정부를 구별할 것을 요구한다.  성직자 또한 교회의 일원이자 국가의 일원이기 때문에 이러한 원칙은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제의, 특히 영대(사제가 목어 걸어 늘어트리는 천)는 성직자가 교회의 공적인 임무를 수행한다는 표시를 나타낸다.  즉 신부가 영대를 걸치고 있음은 교회 차원의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뜻한다.  특히 교회가 공적으로 하느님께 드리고, 하느님 앞에서 행하는 전례(그리스도교 공식 의례)를 수행하는 중임을 뜻한다.  이러한 때 사제는 사제 개인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대변하는 중심적 역할을 맡는다. 

성직자가 제의를 입고 영대를 걸치고 시위에 나선다 -  그건 바꾸어 말하면 국민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의지를 대변하여 나온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럼 촛불시위를 지지하지 않는 나는 교회의 뜻을 거부하는 불충한 신자란 말이냐?  이건 월권행위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바를 마치 교회 전체의 뜻인양 드러냄은  자신과 정치적 의견이 다른 신자를 무시하는 짓이다.  또한 교회를 사적으로 이용하는 짓이다.  시국 미사 역시 마찬가지다.  미사는 기본적으로 열려 있어야 하는,  하느님 앞에서 거행하는 제사이자 잔치다.   그런데 시국 미사가 '열린 미사'인가?  시국 미사는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종교의례의 형태를 빌려 드러낸 것이다.  시국 미사는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은 거부한다.   정치적 의견이 다른 신자가 시국 미사에 참석해서 하느님을 뵐 수 있겠나?

정의구현사제단이란 이름부터가 회원을 사제로 한정한다.  이는 교회의 이름과 권위를 빌려 좀 더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 또한 월권행위다.  교회의 공식 단체도 아니면서 왜 교회의 이름에 기대는가?  여러 사회적 사안에 대한 의견은 교회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국가의 일원으로서 말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며 책임져야 한다.  낙태나 사형 등은 교회의 장상들이 중요한 문제라 판단하여 교회 차원에서 거부 의견을 발표하지만,  그런 사항을 제외하면 교회는 여러 사회적 의견을 수용한다.  그러한 의견 하나하나에까지 간섭하지 않으며, 간섭할 수도 없다.  그리고 현 한국 사회에 대한 여러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신자들 개개인의 이성과 양심에 맡길 일이며,  또한 그렇게 한다.

<<만약 교회가 전면에 나서서 사회에 개입하려고 해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회에 어떤 자유로운 비판적 세력도 없는 최악의 상황일 때뿐이다.  어느 정도가 되어야 이러한 최악의 상황일지는 구체적 기준이 없어서 문제기는 하지만,  적어도 현 한국은 아니다.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나라가 자유로운 비판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

만약 사제들이 제의를 벗고,  수단을 입지 않고 국민 한 사람으로서 나갔다면,  비록 나와 정치적 의견이 다를지언정,  그 자체로 문제라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제의를 입고 영대를 걸치며 교회의 이름으로 시국 사태라며 나서니 문제다. 

누가 교회의 이름으로 사태에 개입하려고 하나?  정치적 의견이 다른 신자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들이 하느님의 뜻을 알고,  교회를 대변한다고 하는 오만이다.    성직자가 한다고 무조건 교회를 대변할 수는 없으며, 하느님의 도구라고 할 수도 없다. 

by 비안네 | 2008/07/28 13:05 | 트랙백 | 덧글(2)

껄껄

大熱萌尊

오모에모에노미코토.

by 비안네 | 2008/07/27 22:55 | 잡담 | 트랙백 | 덧글(2)

나랑 붙여두면 싸움날 만한..

Gabriele Amorth . Un escorista raconta. Italy: Bologna. CED-Centro Editoriale Dehoniano. 1994
[Translated by Nicoletta V. MacKenzie. An exorcist tells his story.  USA: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1999]


저자 가브리엘레 아모쓰는 로마 교구 소속 구마사제로 이 바닥에서는 이름이 높다.  국제구마자협회라는 단체도 만들어 협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오지랍 넓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 신부님이 쓴 책이 영어로 번역되었다기에 교보문고를 통해서 영어판을 구했다.  처음 제목을 볼 때만 하더라도 이 신부님이 쓴, 구마사제로서의 자서전인 줄 알았다. 영어 제목이 '어느 구마자가 하는 그의 이야기'니까.  이런 사람이 쓴 자서전이라면 매우 흥미진진하리라 생각하여 기꺼이 돈을 들였다.

완전히 낚였다.

책 내용은 자기 인생 이야기가 아니다.  너무나도 가톨릭적인 신앙서적 한 권일 뿐이다. 그런데 그 '가톨릭적인'이라는 게 분위기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민중들 사이에서 떠돌았을 만한 분위기를 강하게 띈다.  이 책 내용은 간결하게 정리하면 이러하다.

"악마를 무시하지 마. 주술이니 하는 요상한 짓거리도 하지 마!"


물론 나도 가톨릭을 믿는 사람.... 비물리학적인 것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악마의 이름을 입에 담기 꺼리는 이유도 '불길하니까'이다.  하지만 악마에 대한 인식을 생각의 전면에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 신부님이 쓴 책은 악마를 너무 자주 생각하게 만든다. 자기수양과 자기고양만으로도 신앙생활은 충분히 벅차다.  악마를 자주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도리어 자기수양에 소홀해지기 쉬우니...  '영적 전쟁에 나서는 투사'라는 이미지로 자신을 착각하게 된다. 

뭐. 현대 이탈리아 사정을 들어보면 종교 자체에 무관심한 사람이 많아지고,  종교심이 있는 사람도 가톨릭에 마음을 두기보다 위카 같은 것에 마음을 두는 경우가 늘어난다니 가브리엘레 신부님이 이런 반응을 보임도 이해는 할 만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엄밀성과 중용을 잃은 책이라 높이 평가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이 신부님이 사용하는 어휘를 보면 영성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성모신심에 기반한 바가 크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듯이 나는 공의회주의자... 이러니 내가 더 높이 평가할 수가 없지.   이 신부님과 내가 계급장 떼고 이야기하자고 하면 대판 싸울 것 같다.

신앙적인 입장에서도,  현대 한국 사회를 사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 책을 추천할 수 없다.  내용이 뻔하고 문장이 쉽기 때문에 영어 공부용으로나 써야겠다.

by 비안네 | 2008/07/27 22:39 | 감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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