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04일
중국과 우리나라
김선자 저. 「황제신화: 만들어진 민족주의」. 서울 : 책세상. 2007
중학교 때 급우 하나가 장기판을 가지고 와서 점심을 빨리 먹고 모여서 장기를 둔 적이 있다. 그때 장기판 가장자리에 大中原이라고 쓰여 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떠도는 무협지를 보면 굉장히 한족 중심적인 시각을 그대로 무협지에 대입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민족주의적인 기색을 드러낼 때조차도 장백산에서 전통무예를 익힌 무사가 중원 땅에 들어가 무림을 한바탕 들었다 놓은 뒤 신선의 경지에 들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푼다. 만약 현대식으로 바꾼다면 한국인이 미국에 들어가 미국 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는 식이지. 이런 구도에서도 중원/미국 중심적인 시각, 중국/미국과 대비하여 자신을 규정했음이 잘 드러난다.
이 책은 전적으로 황제 헌원을 상징으로 하여 중국의 민족주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말한다. 읽다 보면 새삼 생각을 많이 한다. 동북공정은 지엽이고 '탐원공정'이 본류인데, 탐원공정이란 '중화민족 오천 년 문명'을 역사화하겠다는 목표 아래 정부 차원에서 주도하는 일이라고 한다. 중국이 그토록 유적도 많고 고문서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4천 년 정도밖에 못 끌어올려서 시방 천 년을 더 끌어올리려고 아둥바둥대는 중이란다.
(중국이 어용작업으로 역사기원을 끌어올리는데도 4천 년밖에 못 하는데, 우리나라는 너무나 쉽게 5천 년을 주장하니 맥이 빠진다. 거기에 환빠들은 일만 년 한민족 기원을 주장하니 얼마나 사상누각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혈통민족주의를 표방하기에는 소수민족이 너무 많다. 그런 상황에서 황제 헌원을 아이콘으로 삼아, 헌원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이 한 기치 아래 모이는' 중화민족이란 개념을 새로 주창했으니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다. 옛 중국의 비한족들도 헌원의 자손이라고 했다는 한족 역사서 내용을 바탕으로 모든 민족을 끌어안는 '공동상징 헌원'을 부각한다고 한다. 염제가 헌원과 형제라는 기록을 근거로 '염황자손'이라는 말을 만들고, 묘족을 포용하고자 치우도 중화민족의 시조라 하여 中華三祖라고 한다니, 헌원과 치우가 탁록에서 싸움은 중화민족간 내전인가 보다. (중국정부가 중화삼조 어쩌고 하면서 치우를 높이려고 해도 인구의 대다수는 한족인 관계로, 신화시대를 다룬 드라마에서도 치우는 늘 추잡한 악역으로 나오는 탓에 묘족이 발끈하곤 한다고 한단다) 조선족도 염황자손의 일원으로 포섭하려고 한다니, 거기에는 단군이 있을 자리가 없다.
더구나 그러한 '황제를 중심으로 한 대일통'이 유가의 사상을 기반으로, 사마천이 사기에 헌원을 역사적 인물로 기록함으로써 시작되었다니 유래가 깊기도 하다. 이게 메이지 유신을 바라본 중국 지신인들 사이에서, 일본에 신무천황이 있다면 중국에는 황제가 있다는 식으로 본을 따면서 본격화되었다고 한다. 일본에 大和魂이 있다면 중국에는 黃帝魂이 있다면서.
섬뜩하다면 섬뜩한 일이지만, 읽으면서 내내 우리나라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치우는 묘족의 조상신으로 보아야지 우리나라 하고는 별 관계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는데, 붉은악마 등은 치우를 우리네 조상으로 생각하여 표징으로 삼는다. (조상신도 아니고 조상으로 본다) 증산도 용어를 빌리면 이 또한 환부역조 아니겠나. 또한 단군도 고려시대에 여러 부족을 통합하면서 평양 근처의 신앙이 국가신앙화하여 전해졌다 하니 규모나 정도가 다를 뿐 우리나라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도대체 민족이 무엇이기에?
나 자신도 한때 민족주의자였지만, 이제 와서는 예전의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중학교 때 급우 하나가 장기판을 가지고 와서 점심을 빨리 먹고 모여서 장기를 둔 적이 있다. 그때 장기판 가장자리에 大中原이라고 쓰여 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떠도는 무협지를 보면 굉장히 한족 중심적인 시각을 그대로 무협지에 대입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민족주의적인 기색을 드러낼 때조차도 장백산에서 전통무예를 익힌 무사가 중원 땅에 들어가 무림을 한바탕 들었다 놓은 뒤 신선의 경지에 들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푼다. 만약 현대식으로 바꾼다면 한국인이 미국에 들어가 미국 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는 식이지. 이런 구도에서도 중원/미국 중심적인 시각, 중국/미국과 대비하여 자신을 규정했음이 잘 드러난다.
이 책은 전적으로 황제 헌원을 상징으로 하여 중국의 민족주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말한다. 읽다 보면 새삼 생각을 많이 한다. 동북공정은 지엽이고 '탐원공정'이 본류인데, 탐원공정이란 '중화민족 오천 년 문명'을 역사화하겠다는 목표 아래 정부 차원에서 주도하는 일이라고 한다. 중국이 그토록 유적도 많고 고문서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4천 년 정도밖에 못 끌어올려서 시방 천 년을 더 끌어올리려고 아둥바둥대는 중이란다.
(중국이 어용작업으로 역사기원을 끌어올리는데도 4천 년밖에 못 하는데, 우리나라는 너무나 쉽게 5천 년을 주장하니 맥이 빠진다. 거기에 환빠들은 일만 년 한민족 기원을 주장하니 얼마나 사상누각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혈통민족주의를 표방하기에는 소수민족이 너무 많다. 그런 상황에서 황제 헌원을 아이콘으로 삼아, 헌원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이 한 기치 아래 모이는' 중화민족이란 개념을 새로 주창했으니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다. 옛 중국의 비한족들도 헌원의 자손이라고 했다는 한족 역사서 내용을 바탕으로 모든 민족을 끌어안는 '공동상징 헌원'을 부각한다고 한다. 염제가 헌원과 형제라는 기록을 근거로 '염황자손'이라는 말을 만들고, 묘족을 포용하고자 치우도 중화민족의 시조라 하여 中華三祖라고 한다니, 헌원과 치우가 탁록에서 싸움은 중화민족간 내전인가 보다. (중국정부가 중화삼조 어쩌고 하면서 치우를 높이려고 해도 인구의 대다수는 한족인 관계로, 신화시대를 다룬 드라마에서도 치우는 늘 추잡한 악역으로 나오는 탓에 묘족이 발끈하곤 한다고 한단다) 조선족도 염황자손의 일원으로 포섭하려고 한다니, 거기에는 단군이 있을 자리가 없다.
더구나 그러한 '황제를 중심으로 한 대일통'이 유가의 사상을 기반으로, 사마천이 사기에 헌원을 역사적 인물로 기록함으로써 시작되었다니 유래가 깊기도 하다. 이게 메이지 유신을 바라본 중국 지신인들 사이에서, 일본에 신무천황이 있다면 중국에는 황제가 있다는 식으로 본을 따면서 본격화되었다고 한다. 일본에 大和魂이 있다면 중국에는 黃帝魂이 있다면서.
섬뜩하다면 섬뜩한 일이지만, 읽으면서 내내 우리나라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치우는 묘족의 조상신으로 보아야지 우리나라 하고는 별 관계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는데, 붉은악마 등은 치우를 우리네 조상으로 생각하여 표징으로 삼는다. (조상신도 아니고 조상으로 본다) 증산도 용어를 빌리면 이 또한 환부역조 아니겠나. 또한 단군도 고려시대에 여러 부족을 통합하면서 평양 근처의 신앙이 국가신앙화하여 전해졌다 하니 규모나 정도가 다를 뿐 우리나라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도대체 민족이 무엇이기에?
나 자신도 한때 민족주의자였지만, 이제 와서는 예전의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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