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육신론

 Q.S.F Tertulianus.  De carne Christi
[이형우 역.  「그리스도의 육신론:교부문헌총서8」 왜관 : 분도 출판사. 1994]

뀐투스 셉티무스 플로렌스 테르툴리아누스Quintus Septimus Florens Tertulianus.
저자 이름이 길다.  라틴인이라 그렇다.  아프리카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라틴 교부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다.  초대교회에서 교부들은 동방교회쪽 사람으로,  그리스어로 저작활동을 하던 사람이 많다. 신학적으로 서방교회가 동방교회와 분기하게 된 결정적 분기점은 성 아우구스티노이다.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교부에 대한 지역적 구분으로 동방교부/서방교부란 말이 있다.  동방교회쪽 사람인가 서방교회쪽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언어적 구분으로 라틴 교부/그리스(희랍, 헬라) 교부가 있다. 해당교부가 주로 어떤 언어로 저작했느냐 하는 것이다. 대개 동방교부는 그리스 교부이며, 서방교부는 라틴 교부이다.  그러나 라틴 교부라 해도 그리스어로 저작을 남기기도 했으니,  로마 제국 시절에는 지식인이라면 응당 그리스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스어를 할 줄 모르던 최초의 라틴 교부가 성 아우구스티노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오직 라틴어만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아프리카 북부 지방은 로마市 교회 선교사들이 선교한 지역으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교회가 성장했다.  아프리카 북부 지방은 로마 영토로 라틴어를 주로 사용했고, 아프리카 교회는 전례며 성경을 라틴어로 재빠르게 번역하여 사용한 덕이 크다.  옛 그리스 영토, 혹은 지식인들이나 쓰고 배우는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니 다가가기 쉬웠던 것이다.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훗날 몬타누스 이단에 빠졌기 때문에, 그토록 영향력이 큰 라틴 교부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성인이란 호칭을 얻지 못했다.  여러 가지로 애석한 일이다.  라틴어를 모르는 나야 알 수 없지만,  테르툴리아누스는 변호사로 명망 높기도 했던 인물이라 라틴어를 무척 고급스럽게 사용한다고 한다.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문법을 복잡하게 구성해서 마치 퀴즈를 푸는 듯하다니 말이다.  그래서 라틴 교부들 중에서도 테르툴리아누스가 쓴 글은 문장이 어렵기로 소문이 났단다.


그리스도의 육신론(de carne Christi)은 테르툴리아누스가 라틴어로 쓴 반영지주의 논박서다. 특히 마르치온파, 아펠레파,  발렌티누스파를 겨냥해서 쓴 저작이다.  그리스도의 육신론은 일종의 종합요약판으로,  테르툴리아누스는 각 파에 대해서도 따로 논박서를 저술했고 또 전해지지만, 아펠레 논박서만은 (테르툴리아누스가 썼음은 확실하지만) 실전되었다고 한다.

번역문을 보아도 문장이 함축적이거니와 문체가 공격적이다.  테르툴리아누스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역주를 보면서 생각해야 알 수 있다.  번역자인 이형우는 왜관 베네딕토회 사제로,  지금은 아빠스(대수도원장)이기도 하다.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배경지식을 전해주고, 본문에서도 라틴어-한국어 대역으로 번역하면서 필요한 부분마다 역주를 단 덕에 따라갈 수 있다.

이걸 읽으면서 디씨 종갤에서의 싸움을 생각한 내가 이상할까....

문체가 굉장히 공격적이다. 

"네가 예언자라면 무엇이든지 한번 예언해 보아라. 네가 사도라면 공개적으로 설교해 보아라. 네가 사도들의 추종자라면 사도들과 일치된 생각을 하여라. 네가 최소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전해 받은 것을 믿어라. 만일 네가 이 중에 아무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죽어 버리라고 너에게 정중히 말해주고 싶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믿어야 할 사항을 믿지 않는 너는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으니 이미 죽은 것이다"

누가 변호사 출신 아니랄까 봐 '허가'  '규정'  '특권' 같은 법률용어가 자주 나온다. '진리의 파괴자'라느니 하는 식으로 문학적인 독설을 쓰기도 하지만,  문장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다.  본디 이름 높은 변호사였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


현대에 와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그 사고의 편린만은 아직도 이어지는 게 영지주의다.  영과 육을 철저히 나눈 뒤 영적인 것만 우선시하고 육체는 저주하는 사고방식이 합당하다거나 건전하다고 볼 수 없다.  테르툴리아누스가 비아냥거린 대로 '자기자신을 싫어하는' 사고방식이겠지.  다빈치 코드와 같은 책 때문에, 또한 반그리스도교 정서에 힘입어 막연히 영지주의를 좋게 보는 치들이 있지만 영지주의는 최악의 선택이다.  영지주의자들이 결혼하지 않음은 수덕,  수양, 정절이란 의미가 아니라 '더러운 육체에 구속될 영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였으니까.

생각보다 널리 알려진,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는 말의 출처가 바로 이 책,  테르툴리아누스가 쓴 '그리스도의 육신론'이었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중세 때 신학자들은 테르툴리아누스의 말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으니,  테르툴리아누스가 쓴 말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에 믿을 만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테르툴리아누스가 저 문장을 써서 드러내고자 한 바는, 결국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다는 의미였으니,  이성과 신앙간 대립을 부각하는 의미로 테르툴리아누스를 인용함은 억지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하나 있으니 그것만은 원문을 따라 인용하자.


< alias non invenio materias confusionis quae me per contemptum ruboris probent bene impudentem et feliciter stultum. >

by 비안네 | 2008/07/25 12:21 | 감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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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티안무 at 2008/07/25 20:55
재밌군요. 꼭 읽어보겠습니다.
Commented by 비안네 at 2008/07/26 02:44
티안무/ 응. 읽어 봐. 정말 좋은 책이야. 교부문서가 이토록 재미있을 줄은 나도 몰랐어. '그리스도의 육신론'은 생각하며 읽어야 하지만, 베네딕토 규칙서라든가 '디다케', '헤르마스의 목자'와 같은 문서는 술술 읽을 수 있어.
Commented by 瑞菜 at 2008/08/11 00:37
초세기의 영지주의는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안다고 잘난체 하고 우월해 하는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더이다.
Commented by 비안네 at 2008/08/12 11:50
瑞菜 / 링크 타고 오셨군요. ^^;;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영지주의를 종교적인 오만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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