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삽질- 달력

내가 역법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이러하다.
몇 년 전에 과학동아에 '그레고리안력 개정안'이 기사에 실린 적이 있었다. 현행 그레고리안력은 각 달 날수가 들쭉날쭉하고 (오죽하면 한국인은 주먹을 쥐고 계산할까), 365라는 숫자가 7과 딱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탓에 요일 또한 매년 다르다. 또한 한 해의 첫날이 천문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불편을 없애고 평년과 윤년 달력 각 하나만 있으면 되는 달력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1년을 13개월로 만들자는 안이 있었다. 하지만 13은 소수인 탓에 사람들 호응이 좋지 않았다. (짐작건데, 서양 풍습이 13을 흉수라 하여 꺼리는 점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흔히 양력이 1년을 열두 부분으로 나눈 연유가 무엇인가? 1 태양년에 달이 열두 번 정도 차고 지기 때문이다. 12란 숫자가 나누기도 좋거니와 이런 배경이 있어서, 사람들은 1년 열두 달 구조를 바꾸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런 배경 속에서 '세계력'안이 나왔다.

세계력 안은 이러하다.
1,4,7,10월은 31일로, 나머지 달은 30일로 한다. 이러면 364일이 된다.12월 30일 다음에 세계일을 넣어 365일을 채우고 세계공통휴일로 만든다. 윤년에는 6월 30일 다음에 윤일을 넣는다. 1월 1일을 일요일로 하여 요일을 배분하되 윤일과 세계일에는 요일을 계산하지 않는다. 이러면 요일을 부여받는 날수는 364일로, 딱 52주간이 된다.

이 안은 여러 모로 합리적이다. 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세계일과 윤일에 요일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1주 7일 체계가 연속성을 잃어버린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서 1주 7일 체계가 얼마나 중요하며,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를 따르는 사람이 지구상에 몇이나 있는가?

이런 논란을 고려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을 발표하면서 이런 부록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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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달력 개정에 관한 선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부활 축일을 어떤 주일에 고정시켜서 안정된 달력을 만들자는 많은 이들의 원의를 중시하면서, 새로운 달력 도입에서 파생될 수 있는 온갖 문제들을 진지하게 숙고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거룩한 공의회는 관계자들, 특히 사도좌의 친교에서 갈라져 나간 형제들이 동의한다면, 부활 축일이 그레고리오력의 어떤 주일에 고정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2. 또한 거룩한 공의회는 국가 사회에 영구적 달력을 도입하려는 시도들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영구적 달력을 제정하여 이를 국가 사회에 도입하려고 고안되는 여러 체계 가운데에서, 주일과 함께 일곱 날로 구성된 주간을 지키고 보호하며, 주간 외에는 어느 날도 두지 않으며, 그리하여 주간들의 연속성이 온전히 보존되는 체계만을 교회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극히 중대한 문제들이 생기면 거기에 대하여 사도좌가 판단을 내릴 것이다.
거룩한 공의회의 교부들은 이 헌장의 모든 것에 낱낱이 찬성하였다. 본인은 그리스도께서 본인에게 부여하신 사도 권한으로 존경하는 교부들과 더불어 이를 성령 안에서 승인하고 결정하고 제정하며, 공의회에서 제정한 대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공포하기를 명령한다.

로마 성 베드로 좌에서
1963년 12월 4일
가톨릭 교회의 주교 바오로 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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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인즉 7일 주기가 연속적인 달력만 인정할 것이로되, 정 여의치 않을 때는 바티칸이 결정하리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합리성이 문제가 아니라 종교의 전통과 관련된 문제인 관계로 해결이 쉽지 않았다. 세계력 찬성자들은 월간지를 내며 주장을 전하였고, 이 문제는 UN에까지 상정되었다. 동양권 국가는 대체로 찬성하고 서양권 국가는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달력 개정은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수많은 현실적 문제에 우선순위가 밀려 미뤄지고 미뤄지다가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까웠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독자적인 달력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사회적으로 쓸 수는 없을 터이나 그런 달력을 만들어보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그래서 천문학 자료를 찾아다녔다.

나는 세계력을 기본안으로 삼았다. 요일체계는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것으로 역법이 요일체계를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전통적으로 역법은 종교와 사이가 긴밀하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이미 그레고리안력이 확고하게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사는 반드시 음력으로 계산한다. 하지만 달력이 특정종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바를 반드시 포함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보편적으로 쓸 달력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스도교 세계에서만 그레고리안력(혹은 율리우스력)을 쓰던 시절과는 이야기가 다르다. 새 달력에 맞추어 전통적인(혹은 종교적인) 축제일을 바꾸든, 아니면 새 달력과 옛 달력을 병용하여 쓰든, 그는 어디까지나 사용자에게 달린 문제이다. 달력이 보편적이 되는데 반드시 요일체계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다.

세계력에서는 1,4,7,10월을 큰달로 삼았다. 나는 좀 더 계산하기 쉽게 3,6,9,12월을 큰달로 삼을 생각을 했다. 세계일에 해당하는 '무월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고, 그 다음날을 1월 1일로 계산하는 식이다. 무월일이 숫자 0이 되는 셈이다. 윤일은 6월 31일에 다음 날에 넣는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무월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을지 끝으로 삼을지 명확한 판단이 서질 않는다.   무월일이 한 해의 시작이라면 3,6,9,12월이 큰달이요, 무월일이 끝이라면 1,4,7,10월이 큰달이어야 할 터이다.  나는 무월일을 한 해의 끝으로 삼아 시범적으로 사용해보았다.

한 해의 시작을 언제로 삼아야 할까? 현행 그레고리안력에서는 한 해의 시작이 천문학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다. 천문학적으로 의미있는 날을 하나 고르라면 단연코 춘분이다. 춘분은 현행 천문학 체계에서 여러 가지로 의미있는 기준으로 쓰인다. 성도를 작성할 때 좌표의 기준점으로 춘분점을 삼고, 성도 자체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춘분 무렵의 하늘 모습으로 그린다.  이는 서양 전통을 반영한 바이다. 서양 전통에서는 춘분을 중요시하였다. 황도 십이궁의 시작이 양자리인 것 역시, 십이궁 설정 당시에 춘분점이 양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의 좌축이 흔들리는 관계로 춘분점은 조금씩 이동하는데, 현재는 물고기 자리에 있다. 서양 뉴에이지나 오컬트 에서 '현재는 물고기의 시대'니 어쩌니 하는 것 또한 춘분점이 물고기 자리에 있기에 나오는 소리이다.

나는 그래서 처음에는 춘분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았다. 그래서 내가 만드는 달력 이름을 '춘분력'이라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시작을 동지로 삼았다.  이렇게 바꾼 이유는 이러하다.

첫 번째로 동지는 현행 그레고리안력의 첫 날과 가까워서(동지는 보통 그레고리안력 12월 22일이 된다) 계산하기 쉽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동지는 동양 전통에서는 대대로 역법의 기준점이 되어서 역사성이 있다.
    (음력으로는 동지가 든 달이 子月이 되도록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는 음력은 寅月을 1월로 치지만, 주나라 때에는 子月을 1월로 삼기도 하였다)
세 번쨰로 동지는 낮이 점차 길어지는 시작점이다. 한 해의 시작으로 삼을 의미가 충분하다.
    (하지만 남반구에서는 정반대라는 문제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쓸 때는 상관없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쓴다면 차라리 춘분을 시작으로 삼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윤년을 설정하는 방법 또한 문제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 - 무월일 - 1월 1일 사이에 동지가 (혹은 춘분이) 오도록 하는 선에서, 그레고리안력이나 정교회력의 윤년 계산법을 쓸까?
아니면 각해의 동지(혹은 춘분) 절입시각을 계산하여 할까?

만약 후자의 안을 쓴다면, 그리고 세계적으로 쓴다면 UTC(세계협정시)를 기준으로 계산해야 할 터이다. 물론 내가 시범적으로 계산할 때는 동경 135도 표준시를 기준으로 계산하여 쓰지만.... 동경 135도 표준시에서 9시간을 빼면 UTC가 되는 터인즉 계산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레고리안력의 윤년 계산법은 정말로 간단하여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로빈슨 크루소도 무인도에서 혼자 계산할 수 있었지. 그런 점은 분명 큰 장점이다. 그에 반해 일일이 절입시각을 계산하는 것은 정확하여 좋긴 하되 대다수 사람은 계산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물론 보통사회에서는 역서의 내용을 가지고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무인도에서도 계산할 수 있는 간편함'이란 매력 역시 저버리기 어렵다.

절입시각을 계산한다면 어떻게 윤년을 계산할까? 그 점은 쉽다. 어떤 해의 절입시각이 정오 이후인데 그 다음 번 절입시각이 정오 이전으로 바뀐다면,  그해는 윤년이다.

만약 세계적으로 쓴다면 그레고리안식, 혹은 정교회식 윤년 계산법을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듯하다. 만약 절입시각을 계산하여 쓴다면 UTC를 기준으로 계산해야 한다. 동지든 춘분이든 전세계적으로 날짜가 하루는 차이가 난다.  동지는 황경 270도 자리에, 춘분은 황경 0도에 태양의 중심점이 도달하는 때(절입시각)가 어느 날짜인지 계산하여 나온다.  그런데 태양이 황경의 어느 지점에 도달하는 순간에 지구상의 시간은 제각각 다르다. 만약 동지 절입시각이 우리나라 시간으로 5일 00시 30분이라고 쳐 보자. 그럼 그 순간이 중국에서는 4일 23시 30분이다.  그럼 우리나라 동지는 5일이고 중국 동지는 4일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쓴다면 UTC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UTC를 흔히 GMT라고도 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UT family에서 GMT는 UT1의 옛 이름으로, UTC와 UT1은 0.9초 내로 차이가 있다. 이 차이가 0.9초를 넘지 못하도록 윤초를 더하거나 뺄 수 있다. 지금까지 윤초를 더하기만 했는데, 지구의 자전이 조금씩 느려지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표준시는 모두 UTC를 기준으로 정한다.

by 비안네 | 2007/08/28 22:2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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