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20일
에스페란토 대회기 03
07년 8월 5일 일요일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에스페란토 대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전날 네다섯 시간을 주대회장(파시피코 요코하마) 코앞에서 헤맨 덕분에 근처 지리는 숙지했습니다. 어려움 없이 대회장에 참석하였습니다.
주대회장은 파시피코 요코하마 4-5층입니다. 4층으로 들어가는데 일본인 아주머니 여럿이 포스터며 팜플렛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oomoto' 사람들이었습니다. 에스페란토어를 하는 사람들은 '오오모토'라는 이름을 자주 듣습니다. 일본 종교라는 것만 알 뿐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지만요. 에스페란토 세계대회 중에는 분야별로 강연이나 모임을 갖습니다. 궁금하던 차에 오오모토 분과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오오모토란 1892년에 '데구치 나오'라는 일본인 여성이 신에게 사로잡혀 경전을 받아씀으로써 설립한 종교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기네 신의 이름을 大本皇大御神(oomoto sume oomikami)이라 부르기에 약칭 '오오모토교'가 되었습니다. 오오모토교는 교단 초기에 일본 정부가 박해했다고 합니다. 오오모토 분과 모임에서 교단측이 보여준 영상 자료에 교단 본부가 깡그리 헐려서, 이를 재건하는 영상도 있었습니다. 현 교주는 5대째로 '데구치 구레나이'라는 여성이라 합니다.
오오모토교에서는 교단 초기부터 에스페란토어를 적극 도입하였습니다. 자체적으로 에스페란토어를 받아들이고 교육하며, (종교나 국적에 상관없이) 에스페란토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을 골라 매년 '데구치상'을 수상하기도 하지요.
우리나라 원불교에서도 교단 차원에서 에스페란토를 후원하며, 에스페란토 세계대회에서도 원불교 분과 모임을 가집니다. 원불교 경전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오오모토교에서는 기도할 때 기본적으로 '친콘'鎭魂이라 부르는 수인을 취한다고 합니다. 오오모토 분과 모임에서 모두에게 이 수인을 취하게 한 뒤 일본 전통음악을 들으며 묵상하게 하기도 했지요. 저는 문화인류학이나 종교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천주교인인 관계로 구체적인 종교의례로 들어가면 지식이 그리스도교쪽으로 한정된 탓에 친콘 수인을 어디서인가 많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수인이랑 닮았는지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일본 신사에 가서 보니, 몇몇 아주머니들이 참배하면서 친콘과 비슷한 자세를 취함을 보았습니다. 오오모토에서만 쓰는 자세는 아닌 듯합니다.
에스페란토어를 쓰는 사람과 에스페란토주의(esperantismo)에 동조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에스페란토 역사에서 초기부터 제기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자멘호프 박사가 주장했던 인류인주의(homaranismo)에 동조하면서, 에스페란토를 받아들이고 사용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에스페란토를 배운 사람이 에스페란토를 어디에 쓰든 개인 문제일 뿐이라고 선을 엄격하게 그은 사람도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에스페란토를 배웠다 하여 에스페란토주의에 동조할 책임도 없고 빚도 없습니다. 하지만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사람의 사상이 그러했기에, 에스페란토를 배운 사람 중에 상당수가 에스페란토를 하는 사람이 에스페란토주의자가 되기를 바란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소망입니다.
오오모토교에서 에스페란토를 표교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어찌 보아야 할까요. 사실 외국인들에게 전파하고자 한다면 영어로 전달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그런데도 구태여 에스페란토어를 사용하려는 것은 에스페란토주의에 나오는 '언어나 기타 외부요소에 구애받지 않는' 국가(또는 민족)간 교류, 인류인(hamarano)라는 요소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에스페란토주의(혹은 인류인주의)는 특정종교에 에스페란토가 얽매이는 것 또한 거부합니다.
많은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어를 하는 사람)들이 에스페란토주의와 상관없이 에스페란토어를 합니다. 생각없이 놀기가 얼마나 즐겁습니까?
에스페란토 역사 초창기에 노동자들에게 에스페란토를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다른 언어를 배울 여력이 없어 외국과 전혀 교류를 가질 수 없으니, 노동자들이 에스페란토를 배움으로써 자국뿐만 아니라 외국 노동자들과도 교류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진짜 밑바닥 노동자들은 에스페란토를 배울 만한 여유를 낼 의지가 없었거든요. (당장 배운다고 돈이 들어오지도 않는데 왜 배우겠습니까) 에스페란토가 여유 있고 돈도 되는 유럽인들 여가도구가 되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에스페란토계에서는 네트워크가 중요합니다. 영어는 현실적인 세계어입니다. 하지만 영어를 배웠다는 것만으로 어떤 연대의식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허나 에스페란티스토들 사이에서는 에스페란토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서로 연대의식을 갖지요. 에스페란티스토가 적기에 가능한 일일 터입니다. 그래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움을 받는다 하여 에스페란토를 어떤 단체의 도구로 쓰는 일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도 조금은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다.
이날 밤에 '나찌아 베스페로' 행사가 있었습니다.
'인테르나찌아'가 '국제적인'이라는 뜻인데 반해 '나찌아'는 '민족적인'이라는 뜻입니다. 나찌아 베스페로 행사에서는 일본문화 공연을 두 시간 반 정도에 걸쳐 하였습니다. 일본 아악(천황의례 등에 쓰이는 엄숙한 전통음악)도 하고 노 공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반응이 제일 좋았던 것은 마지막 공연이었지요. 한 2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 스무 명 정도가 공연장에 올라와 단체로 북을 치는 공연이었습니다. 정말 북만 때려대는데 무척 신나고 흥겨웠습니다. 북 소리가 사람 몸을 울리는데 쇳소리나 전자음하고는 감각이 아주 다릅니다. 지금도 공연하던 젊은이들이 "와쇼이" 하고 외치는 소리를 잊지 못합니다. 서양인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치기도 했지요.
저는 또 다른 이유로 이날 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제 옆에 한 백인 할아버지가 앉았습니다. 알고 보니 핀란드 사람이었지요. 자기 옆에 동양인 청년이 앉아 있으니 "일본인인가요?"하고 물었습니다. 제가 "한국인입니다"하고 답하니, 자기가 한국에서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를 열 때 참석했다고 운을 떼더군요. 저는 그래서 공연이 끝나고 쉬는 시간마다 이 할아버지한테 말을 걸었습니다.
이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 아우디스 케 물따이 소비아따이 솔다또이 모르띠스 엔 라 빈트라 바탈로" (저는 많은 소련군 병사들이 겨울전투에서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라 빈트라 바탈로? ........아, 라 빈트라 밀리토"
(겨울전투?......아, 겨울전쟁)
제가 전쟁이란 말을 바탈로(전투)란 말로 착각해서 잠시 못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말을 알아듣자마자 자세를 제 쪽으로 돌리더니 "스탈린 - " 어쩌고 하면서 제가 못 알아들을 속도, 어려운 단어로 좌악 말하더군요. 태반을 못 알아들었습니다. 외국인이 자기네 역사를 언급하면 누구나 쉬 흥분하나 봅니다.
겨울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소비에트와 나치가 리벤트로프 조약을 맺어 동맹을 맺고 소비에트가 핀란드를 공격한 사건입니다. 이때 핀란드군이 겨우내 소련군을 막다가 봄이 될 무렵 항복했기 때문에 '겨울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핀란드 사람은 러시아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지 않나요?"
할아버지가 답했습니다.
"젋은 사람들은 가지지 않아요. 하지만 나이든 사람은 조금 다릅니다. 두 나라가 화해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정치인들 이야기일 뿐, 국민들이 화해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직 러시아를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겨울전쟁 당시에 핀란드에 계셨나요?"
"핀란드에 있었고 그 광경을 보았지요"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 by | 2007/08/20 14:21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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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ohee/ 어라, 소공동이라.... 홍대 근처 다중 네트워크 센터에서 에스페란토 강좌를 하지요. 거기일지도 모르겠네요. ^^;;;
에스페란토는 그것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운동인 만큼, 여러분이 사용한 에스페란토는 그것이 고도의 활동이건, 초기적활동이건 모두 우리와 공통된 연대활동을 벌이는 셈이겠습니다. 아래의 웹자보는 <다중지성의 정원>이라는 자치적이고 대안적인 교육-문화단체의 봄학기 언어강좌들만을 특성화시켜 소개하는 것입니다. 네이버에서 '에스페란토, esperanto'를 검색해서 이 블로그로 들어오게 됐구요. 그럼 항상 건강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Saluton!!! Mi estas Linio. Linio estas ‘line’ en anglino. Mi subite vizitis vian blogon, kaj pugnan salutparolis en reklamo, tial mi pardonas al vi. Nomo de linio uzigis por kion signifi substrekanton de legajxon kaj eskaplinion de filozofion. Uzanto esperanton. Kauxze de gxi estas jam unua movado, esperanto, kiu vi uzigis, avizis kion vi estas mia amiko kaj kunulo. Suba bildo dosiero prezentas printempo-semestroan lingvo-kurson de ‘Gxardeno de ultitudintelekto’. ‘Gxardeno de Multitudintelekto’ estas auxtonomeca kaj alternativa eduko-kultoro institucio. Mi elsercxis vian blogon tra sercxvorto ‘에스페란토’. cxim sanon, gxis revido!
“즐거운 지식 공통의 삶 다중의 지성 공간”
다중지성의 정원
2008년 다지원 봄 강좌 3월 10일 개강!
소통
파즈(Paz) 영화로 배우는 에스페란토 2008년 3월 14일 금요일 저녁 7:00 ~ 9:00 8강
구정연 프랑스어 문법 독해 단기완성을 위한 초급 프랑스어 2008년 3월 15일 토요일 오후 12:00 ~ 2:00 8강
구정연 프랑스어 문법 독해 단기완성을 위한 초급 프랑스어 <2> 2008년 3월 15일 토요일 오후 3:00 ~ 5:00 8강
심세광 프랑스어 원전강독 - Gilles Deleuze et Félix Guattari : Biographie croisée 2008년 3월 11일 화요일 저녁 7:00 ~ 9:00 8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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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좌관련 더욱 자세한 내용과 수강신청 안내는 다지원 홈페이지 daziwon.net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중지성의 정원(다지원) daziwon.net 02-325-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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