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수도원 역사가 탔다.

2007년 4월 6일, 부산에 있는 아빠스좌 대수도원인 성 베네딕토 왜관 수도원에 불이 났다. 불이 난 날짜가 성 금요일,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받다 운명하셨음을 기리는 날이니 참으로 얄궂은 일이다.

비록 화재가 났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문제는 왜관 수도원 유물 보존실이 다 타 버렸다는 점이다. 맨 처음 이 소식을 접하고 무척 놀랐다. 왜관 수도원에 독일 베네딕토 수도원측이 '영구 임대' 형식으로 돌려준, 겸재 정선의 그림이 한 점 있다. 왜관 수도원에서 그 그림이 한국인에게는 국보급 유물이라 설명하며 온갖 방법으로 어르고 달래서 반환받았다. 만약 그것이 타 버렸다면 아니 돌려받음만 못한 일이 아닌가?

다행히 겸재 정선 그림은 무사했단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나라 역사 기록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음을 오래 전부터 아쉬워했다. 현재 우리나라 기록 작성 및 보존 행태는 조선 시대만 못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전키 위해 목숨을 건 선비도 있었음을 생각하면, 현재 기록 보존 실태는 실로 개판이다. 국가 기록원에 김구 선생 재판 기록 등 역사적 기록이 없다. 국가 기록원에 정부 각 부처에 영구 보존급 기록을 넘겨달라고 요청하면, 각 부처가 얼마나 불성실하게 넘겨주는지 모른다고 한다. 기록 남기기를 싫어한다. 언제 어떤 식으로 책임져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자이툰 부대 파병 관련 국무회의 당시에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방부 장관 등 국가 고위 인사가 그토록 여럿 참가했건만, 국무회의 기록에 남은 것은 단 네 글자, '이의 없음'이란다. 국가 공식 기록을 이렇게 무성의하게 남겨도 되나?

왜관 베네딕토 수도원은 이번 화재로 역사의 일부를 날린 셈이다. 기록, 혹은 수도회 자체 역사를 담은 유물을 도대체 무엇으로 값을 매기겠는가. 차라리 건물이 다 탔을 망정 유물 보존실이 타지 않았더라면 하고 아쉬워한다.

(수도원 건물 복구에만 몇 억이 들어가는 탓에 모금 활동을 하는데, 사람들이 돈을 잘 대줄까?)

by 비안네 | 2007/05/04 00:25 | 잡담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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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진냥 at 2007/05/04 09:26
언젠가 문화재를 술먹고 성질난다고 불싸지른 놈도 있었죠..=ㅁ= 대놓고 덤비는 놈을 어떻게 말리지야 못하겠지만, 문화재를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 국민의식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비안네 at 2007/05/05 22:34
진냥/ 나도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야. 아버지께서 어릴 때 고향에 큰물이 져셔 산에 있던 고분이 무너지는 통에, 부장품이 흘러나왔대. 마을 어른들은 무덤에서 나온 재수없는 물건이라고 버리렸는데, 아버지 친구분 하나가 부장품을 챙겼다가, 서울 올라가는 자기 삼촌에게 맡겼대. 삼촌이 서울 올라가서 인사동에 처분한 뒤 자기 조카 몫으로 돈을 가져왔는데, (삼촌 몫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을 텐데도) 적지 않은 돈이었대. 문화재를 '그냥 낡은 물건', 혹은 '돈이 되는 물건'으로만 생각하니 이 지경이 되지. 생각하면 그런 의식이 아쉽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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