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히 SS] 거울 조각-1

에스카플로네 이후 처음으로 쓴 팬픽이다.
묘하게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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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더러 낯가림이 심하다고 했다. 수줍음이 많다고도 했다. 사람들 말대로 내가 낯가림이 심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발이 넓고 낯선 사람하고 금방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무척 부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조금 전에 만난 사람에게 말을 걸기가 나한테는 힘들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느니 차라리 몸으로 때우는 편이 나았다. 다른 사람들은 질러가는 길을 나는 툭하면 돌아갔다. 내가 언제부터 남에게 묻느니 돌아가는 길을 택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의 파편을 가끔 볼 때가 있는데 하나같이 기분 나쁜 장면이다. 어릴 때 무슨 일이 있었던 듯하지만, 그게 무슨 일인지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모른다. 친구를 아예 사귀지 못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친구하고 싸우기라도 하면 제대로 화해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태연히 웃으며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끝내 내밀지 못했다.


어렵게 친구가 되고 쉽게 소원해졌다. 몇 번 그런 일을 겪으니 사람 사귀기가 무서웠다. 


내가 '친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다섯 명이 채 못 된다. 서로 부대끼고 악머구리 끓듯 소란을 떨 수 있는 사이는 아니어도, 힘든 일이 있을 때 다가와 위로해 주는 사이는 되었다. 


나가토 유키, 아사히나 미쿠루, 코이즈미 이츠키.  그리고 그 사람, 쿈. 

가족들과 걔네들을 빼면 나와 이야기하는 사람 따위 없었다. 나라고 혼자 있는 것이 좋지는 않았다. 외롭기 싫었다. 내 뜻과는 달리 어느새 외톨이가 되었다. 유령, 혹은 그림자. 그것이 내 별명이었다. 별명을 아는 사람도 같은 반 아이들뿐, 다른 옆 반만 가도 날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좀 이상한 의미로 유명했다. 가슴이 저미도록 외로워서 귀신, 우주인, 초능력자 등 오컬트 방향으로 책을 읽고 자료를 모으고는 했다. 귀신이나 우주인이 실존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긴장하면 손톱을 물어뜯듯이 뭔가 집착할 것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나는 누구에게 내가 그런 것에 파고든다고 떠든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난 유명해졌다, 이상한 분야로 책을 읽는 외톨이 여자애로. 내가 예쁘다고 쑥덕대던 남자들도 있긴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뒤에서 낄낄대기만 할 뿐 내 앞에 나선 사람은 없었다. 그 사람, 쿈을 빼고는.


[ "고백한 남자를 전부 찬 게 사실?!"

"왜 너한테 말해야 하지? 뭘 들었는지 모르지만 상관없어. 전부 사실이니까."

"'한 명은 제대로 사귀어 보자'고 생각한 녀석은 없어?"

"전혀 없어, 모두 바보같이 정상적이었어. 우주인, 미래인, 초능력자도 아닌데! 그리고 고백이 전부 전화라니! 그렇게 중요한 건 얼굴을 마주하고 하라고!"]


학교 성적은 그저 그랬다. 운동이라면 젬병이었다. 나는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하다못해 불량배 애들이 그러하듯 다른 애들을 휘어잡고 내 영역 안에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런 것도 없었다. 아니, 그런 힘이야말로 내가 정말로 바라던 소망이었다.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고 형편을 살피느라 내 신경이 조금씩 닳았다.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큰소리 탕탕 쳐 보기를 바랐다.


["히가시 중학교 출신, 스즈미야 하루히. 단순한 인간에 흥미는 없습니다. 이 반에 우주인, 미래인, 4차원인, 초능력자가 있다면 제게 오십시오! 이상!"

"뭘 협력하면 되지?"

"새로운 클럽 창설! 나는 부실과 부원을 확보할 테니 너는 학교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해!"

"무슨 클럽을 만들 계획?"

"그런 건 뭐든 상관없잖아!"]


지금껏 용케도 부러지지 않고 버텼다고 스스로 대견해 했다. 나가토 유키가, 아사히나 미쿠루가, 코이즈미 이츠키가 조금씩 날 지지해 준 덕분에 힘들어도 자신감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앞으로는 어떻게든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합을 넣곤 했다. 하지만 그 사람, 쿈은 달랐다. 그 사람은 날 위로해 주지도, 날 따돌리지도 않았다. 내가 전교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잘 알 텐데도 그런 평판 따위 전혀 모르는 듯이 날 대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어울린다고 노란 머리띠를 하나 사 주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나도 웃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을 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다른 누군가를 이름도 아니고 별명으로 부르게 되어서 정말로 기뻤다. 그리고 필연인듯 쿈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 자신감의 원재료는 뭘까. 2mg이라도 좋으니 나한테 나눠줬으면 좋겠네."

"그래? 살짝 주입해 줄까? 어떄? 조금은 효과가 있지?"

"이런 눈싸움에 무슨 효능이 있는데?"

"에너지를 시선에 담아서 보내줬잖아. 몸이 불끈불끈 한다던가 발한작용이 촉진된다던가 그런 걸 너도 느꼈지?"]


내가 바라는 것, 그저 누군가 어울려 격의 없이 웃고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 받으며 깔깔거리는 것뿐이었다. 그밖에는 달리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쿈이나 나가토나 아사히나, 코이즈미는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by 비안네 | 2006/06/17 23:4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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