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

글쓴이는 우리나라 에스페란티스토로, 일제시대를 겪어 일본어도 무척 잘합니다.
nekonato라는 닉으로 올렸던 글을 제가 번역했습니다.

<번역문> 

천황궁 북서쪽 쿠단에 인접하여 자리잡은 야스쿠니 신사는
아주 이름높은 신토 사원으로, 조금 특별하다.
야스쿠니 신사는 1868년 시민 전쟁 중 죽은 병사들을 신으로
모시려는, 메이지 천황 뜻에 따라 1869년 창건되었다.
(보쉰年 전쟁 : 보쉰은 1868년에, 오랜 관습에 따라 붙인 이름이다)
처음엔 이름하기를 '쇼콘샤'라 하였다.
(죽은 병사들을 위한 거룩한 사원이란 뜻이다)
1879년,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로 바꾸었다.
야스쿠니란 이름은 '조국을 평화롭게 하라' 라는 뜻이다.

신토는 일본인들의 고유한 종교로, 전형적인 다신교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신사에서, 사람들은 고유한 신들을 모신다.
예를 들어 미에 현에 있는 이세 진구(옮긴이-신궁을 뜻하는
말인 듯한데, 제가 일본어를 몰라 알 수 없습니다)은
태양신이자, 천황의 여조상이라 불리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여신을 모신다. 사람들은 이세 진구를 뭇 신토 사원 중 으뜸으로 친다.
그런데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고유한 신들이 아니라,
천황과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군인들을 모신다.  
보쉰 전쟁 때부터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던 때마다,
더 많은 군인들을 야스쿠니 신사에 모셨다.
세이난(일본 남서부) 전쟁부터  1877년 두 번째 시민 전쟁 때,
1894-95년 중일 전쟁, 1904-05년 러일 전쟁, 1931년 두 번째
중일 전쟁 등등.  
1945년 제2 차 세계대전에 패했을 때는 숱한 군인들이
천황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호국신으로서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졌다.  그렇기에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무츠히토), 타이쇼(요시히토), 쇼와(히로히토) 등
연이은 천황들과 황군에 의해 전력으로 수호받았다.
1889년 메이지 헌법(대일본제국 헌법) 하(下)에
사람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중요국가기관 중 하나라는 특별한
자격을 주었다. 모든 전사자 유족들에게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그네들 아들, 형제가 야스쿠니 신사에 있으므로, 신사는
민중들한테서도 존중받았다.

1931년에 개전한 중일 전쟁이 확대되면서, 마침내 일본이
제2 차 세계 대전 때 미국과 다른 나라를 적대하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전보다 더 존중했다.

그 당시에 다음과 같은 노래가 대중적이었다. (지금도 이 노래는
잘 알려져 있고 종종 불린다)나

<너와 나는 해군학교 한 마당에 자리한, 한 철 봄 사쿠라 꽃.
우리가 한 번 꽃피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떨어질 채비를 갖추었느니
자- 우리는 조국을 위해 전장으로 주저없이 뛰어드네.

너와 나는 한 철 봄 사쿠라 꽃들.
설령 우리가 각각의 전장에서 전우들과 떨어져 외롭게 죽는다 해도,
우리 애달픈 야스쿠니 신사 마당, 사쿠라나무 한 가지에 핀 꽃으로
다시 만나자!>



위 노래는 일본어로 이러하다.

키사마토 오레토 와 도키노 사쿠라.
오나지 헤이가코노 니와니 사쿠.
사이타 하나나라 치루노와 카쿠고.
미로토 치리마쇼 쿠니로 타메.

키사마토 오레토와 도키노  사쿠라
하나레 바라레니 시노토모
하나노 미야쿠노 야스쿠니 진자
오나지 코루에니 사이테 아오.
- 도키노 사쿠라 (한 철 봄 사쿠라 꽃들)
작사 : 사이조 야소  작곡 : 오무라 요시아키

(사쿠라나무는 버찌나무와 비슷하다. 이 꽃은 매해 봄에 꽃 피지만
기간이 짧다. 동시에 꽃이 지며, 열매를 맺지 않는다.)

옮긴이-사쿠라가 벛꽃인 줄은 알지만, 어감 때문에 일부러
       사쿠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야스쿠니 신사에서 다시 보자! 전쟁 말, 군인들은 서로
이렇게 약속한 뒤 가망이 없는 전장으로 출동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다수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전쟁에서 패했다.
전후, 1946년 일본 헌법(현행 일본 헌법)에 따라,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 보호에서 제외되어, 독립적인 종교 조직이 되었다.
국군주의와 연계뙨 국가 신토에서 떨어트리자는 의견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헌법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였다.

그런데도 야스쿠니 신사의 사회적 위치는 불안정하다.
보수적인 정치인과 전사자 유족들 중 몇몇은 국가가 야스쿠니
신사를 보호하기를 열망한다.
이들 의견에 따르면, 나라를 위해 전쟁 중에 전사한 군인을
신사에 모시기는 자연스러우며, 국가로서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완고하게 그런 주장을 반대한다.
이 사람들 의견에 따르면, 군국주의와 연합한 국가 신토가
슬픈 전쟁으로, 패전으로 이끌었으며, 야스쿠니 신사야말로
이러한 국가 신토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 국민들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19세기 말부터 일본에게 침략당한 동남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재평가하려는 것에
격한 감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대중들의 의견은 ... (옮긴이-번역하지 못했음)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물음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현시대에 재평가하려는 물음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매해 봄마다 야스쿠니 신사 마당에 사쿠라 꽃이 한가득 핀다.
사쿠라 꽃들이 전쟁 중에 죽은 군인들을 알려준다.

by 비안네 | 2006/02/09 23:09 | 번역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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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진냥 at 2006/02/10 00:49
사쿠라 꽃처럼 아름답게 지다... [전쟁과 인간]에서 본 문구가 생각나는군요. 일본군은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는다는 신념을 근간으로, 아름답게 죽지 못하고 항복해온 중국군 포로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데에 있어 심리적 저항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Commented by 비안네 at 2006/02/10 23:19
무엇이 악인지 정의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자신의 가학성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무엇이 악인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는 꼭 필요하지만... 군대가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어디까지를 용납할 수 있을까? 내가 군인이라면 어디까지 납득했을까? 난 잘 모르겠어. 그리고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기를 바라고.
Commented by Kaff at 2006/04/21 23:20
'진구'는 신궁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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